통장의 잔고가 허망할수록 눈길은 길가의 로또 간판에 더 오래 머물기 마련이다.
경기 불황이 지속되자 세계 각 국은 카지노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각 주들은 앞다퉈 카지노 신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재정난에 시달리다 보니 돈세탁, 도박중독자 양산 등 부작용 등에도 불구하고 카지노를 통한 세수 확보에 나선 것이다. 신규 카지노도 모자라 아예 온라인도박 합법화에 뛰어드는 곳들도 여럿이다. 카지노가 죽은 경제를 살릴 특효약인지, 불황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줄 마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제주의 한 카지노가 1,200억원에 팔렸다. 제주하얏트호텔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홍콩의 부동산 개발업자 란딩에 팔린 것이다. 재작년 제주신라호텔 카지노의 매각 대금(195억원)과 비교하면 6배나 비싼 가격이다. 제주에서 제일 규모가 작았던 제주하얏트 카지노로선 대박을 맞은 셈이다.
7,8년 전만 해도 제주의 카지노들은 매우 우울했다. 8개나 되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들은 주로 일본인 관광객에 의존했는데, 2000년대 들어 엔화 가치가 떨어져 VIP 고객이 크게 줄어들었다. 2006년엔 서울과 부산에 그랜드코리아레저의 새 카지노까지 문을 열면서 제주의 카지노들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모 카지노는 휴업에 들어갔고, 또 다른 카지노는 관광진흥기금을 내지 못해 사업정지 처분도 받았다. 도내 카지노 수가 많으니 구조조정을 하자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지분들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기신기신 버텨오던 제주의 카지노가 살아나기 시작한 건 최근 2,3년 갑자기 몰려드는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들 때문이다.
파라다이스인천 카지노도 비슷하다. 회사는 만성 적자인 이곳을 200억원 정도에 내다 팔려고 했단다. 몇 번 매각 시도가 있었지만 계약이 자꾸 틀어졌다. 어쩔 수 없이 떠안고 있던 천덕꾸러기가 지금은 한 해 200억원씩 꼬박꼬박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이제는 아예 2조원 가량을 투입해, 한국형 복합 카지노리조트로 거듭나겠다고 나섰다.
일찍이 중국 시장을 보고 복합리조트에 뛰어든 마카오는 이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6배가 넘는 매출액을 올리고 있고, 2010년 2개의 복합 리조트를 세운 싱가포르도 그새 라스베이거스 수준에 올라섰다.
마카오 싱가포르 사례를 보면 복합 리조트가 큰 흐름인 것 같다. 하지만 전체 시설의 5%도 안되는 카지노가 복합 리조트 총수익의 80% 이상을 책임진다고 한다. 라스베이거스 샌즈는 56억 달러를 투자해 싱가포르에 마리나베이 샌즈를 연 지 불과 4년 만에 투자금을 회수했다. 지금부터 고스란히 쌓이는 산더미 같은 돈은 또 다른 나라에서의 복합 리조트 건설에 들어갈 것이다. 세상에 이런 노다지도 없다. 카지노 판의 절대 승자는 거대 카지노자본인 셈이다.
우리도 이제 카지노의 득과 실을 면밀히 들여다 본 뒤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인 듯하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복합 리조트로 활성화 할 것인지, 아예 내국인까지 개방해 거대한 외자를 끌어들일 것인지, 아니면 부작용이 큰 카지노 개발을 적극 봉쇄할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판단을 못내리고 미적대기만 할 뿐이다. 6ㆍ4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끄러운 카지노 이슈를 끄집어 냈다간 이미지만 망칠 것이라 생각한 듯하다. 제주 신화역사공원 개발에 참여키로 했던 란딩도 제주도가 내줄 카지노 허가권을 기다리다 더는 안될 것 같아 카지노 운영권을 사들인 게 아닌가 싶다.
정부는 카지노를 선제적으로 이용하기 보다는 망해가는 경제구역 등을 살리기 위한 히든 카드로만 쓰려는 분위기다. 경제를 살릴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어 늘상 카지노를 기웃거리면서도, 막상 사행산업 육성이라는 손가락질이 나오면 짐짓 모른 척 한다. 그런 어정쩡한 자세에서 자기 손만큼은 검댕을 묻히고 싶지 않다는 비겁함이 느껴진다.
포커에서 돈을 따려면 끌려 다니지 말라는 말이 있다. 베팅을 주도해야지, 콜만 하며 끌려 다니는 게임을 할 바에는 일찍 카드를 꺾는 게 낫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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